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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 근면, 사랑’ 그 가르침대로 가르치겠습니다. 상세정보 이며 작성자, 조회, 등록일, 첨부파일, 내용, 다음글, 이전글을 나타내는 표입니다.
‘진리, 근면, 사랑’ 그 가르침대로 가르치겠습니다.
작성자 관리자
조회 1687 등록일 2012/05/03
첨부
한림디자인고등학교 졸업생 함OO


내가 서 있는 곳은 늘 같은 자리였다. 사춘기 시절 방황 속에서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끝없는 원망을 품었던 그 시절에도, 그 방황의 끝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없는 감사함과 소중함을 느끼기 시작한 그 당시에도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손자, 손녀들을 위해 누구보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하루를 생활하시는 할머니라는 울타리 안. 그 곳에서 사랑을 배우며 꿈을 키웠다. 또한 늘 책과 가까이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언니를 보며 인내와 노력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리고 아버지의 성품을 그대로 물려받아 항상 친절한 남동생으로부터 배려와 관용의 미덕을 배웠다. 비록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지만, 할머니, 언니,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서로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믿고 의지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과 같지 않았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탓에 ‘가난’이라는 말이 늘 꼬리표처럼 내 뒤를 따랐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굴레 안에서 허덕이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전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하루빨리 취업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한림디자인고등학교((구) 충주여상)에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난 때문에 포기해야만 했던 것들에 대해서 알 수 없는 분노와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선생님들께, 사회에 반항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때마다 선생님들께서 나에게 손을 내미셨다. 난 그 손을 외면했다. ‘그들은 절대 이 아픔을 모를 거야’라는 나의 오만함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께서는 끊임없이 나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푸셨고, 그 사랑 덕분에 다시 마음을 잡고 고3이 되어 ‘삼화전기’라는 콘덴서 만드는 회사에 취업을 나가게 되었다.

취업 후 첫 월급날부터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적금을 들었다. 비록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고정적인 수입에 내 생활이 안정을 찾게 될 무렵이었다. 오랜 만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축제, 중간고사, 미팅, 동아리 활동 등 친구들이 각자 대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난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고등학교 시절보다 더 가난해 졌음을 느꼈다. 내 스스로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꿈도 있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한 번도 ‘꿈’을 꿈 꾼 적이 없이 현실에 안주하고만 있었다. 충격적인 순간 이었다. ‘땡전 한 푼’ 없었던 사춘기 시절 가난보다 마음의 빈곤함이 더 혹독한 가난이었음을 깨닫고 회사를 그만 두고 꿈을 찾기 위해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교 진학을 결심했다. 노량진 1평 짜리 고시원에서 2년간 거주하며 처음으로 진지하게 공부를 시작했고, 25살의 나이에 충남대학교 새내기가 되었다. 대학교 입학 당시 내 통장 잔고는 ‘0원’ 이었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예전부터 꿈꿔왔던 ‘교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나에게 필요한 건 열정과 노력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배웠으니...

대학교 생활 역시 순조롭지는 않았다. 뒤 늦게 시작한 대학 생활이며, 학점 관리와 생활비 마련 등등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이 조바심 갖지 않고, 스스로의 일에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인 것 같다. 힘든 순간을 참고 견디다 보니 어느덧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그 해 봄, 내가 그동안 상상했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교직이수 마지막 단계인 ‘교육 실습’을 하는 것! 충남대학교 근처중,고등학교에서 4주간 교육실습을 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모교(한림디자인고)에 양해를 구하고 내가 꿈을 키웠고 한때는 방황의 길도 걸었던 추억의 장소에서 교육실습을 하게 되었다. 꿈만 같은 4주의 시간!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예전의 내 모습도 떠올려보고 나처럼 힘든 시기를 겪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이렇듯 짧은 4주의 학교 체험 덕분에 교사가 되리라는 나의 꿈이 더 확고해졌고, 교육실습을 마치고 대학교로 돌아가서 1년 동안 매일 하루에 4시간씩 자면서 영어 임용 시험을 준비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힘들 때마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1월 27일, 내 꿈이 이루어졌다. 간절히 원했던 ‘교사’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가난 때문에 늘 허덕여야 했던 청소년기. 가난했기에 포기해야 했던 대학교 진학. 공장에서 3년간 일했던 것. 뒤 늦게 수능을 보기위해 노량진에서 2년간 대입 시험을 준비했던 것. 25살 때 충남대학교에 입학 한 것. 어렵게 교직 이수를 한 것. 모교로 교육실습을 나와 은사님들과 생활했던 4주. 임용 시험을 준비하면서 겪었던 힘든 일들. 이 모든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즐겁고 행복했다. 말썽꾸러기였던 나를 꿈을 키우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키워주신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서둘러 모교에 인사를 하러 갔다. 방황했던 청소년기 시절 끊임없이 나를 격려해주고 사랑해주셨던 스승님들이 안계셨다면, 지금의 나 또한 없었기에... 요즈음 나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늘 꿈만 같고 감사하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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